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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15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메모
살아가는이야기/독서2019. 12. 15. 21:47

 

소션재판을 하면서 깊이 실감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정해체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비행을 저지르고 이곳에 온 소년들의 경우 가족 구성원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는 경우가 적고 편모, 편부, 조모, 조부, 형재자매 혹은 친척 집에 얹혀 있는 경우 등 결혼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또 겉보기에 온전한 형태의 가정이라 해도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45쪽

 

근본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일단 부모와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ㅗ년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늘 소년들에게 부모와 가족을 향해 꿇어앉아 '어머니,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를 열 번씩 외치게 하거나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열 번씩 외치게 한다. 소리가 작거나 형식적이라고 생각될 때는 '마음에 진심을 담아 다시 열 번 더 외쳐라' 하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 때 난생처음으로 부모에게 '사랑합니다'란 말을 해봤다는 소년들도 많다. 

반복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밖으로 돈던 말이 소년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어떨결에 한 번, 두 번 외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슴에서 무언가가 올라와 소년을 울컥하게 만들고, 이를 듣고 있는 부모의 마음도 울리게 만든다. 46쪽

 

어쩌면 이 소년의 재비행이 부모의 잘못된 훈육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년비행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은 결국 가정과 부모에게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127쪽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들이 절망감과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내가 담당했던 사건의 어느 피해자는 견디기 어려운 학교폭력으로 자살충동을 여러 번 느꼈지만 같이 피해를 당하는 친구와 서로 위로하며 지냈기 때문에 동변상련의 정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거창한 도움을 주지는 않더라도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138쪽 

 

외롭고 절망스러울 때 누군가가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에게 달려가 마음속 괴로움을 털어놓자. 꼭 가족이 아니어도 좋다. 위기의 순간에 떠오르는 사람, 그가 바로 당신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으니. 144쪽

 

비행내용의 참담함에만 분노하고 비행을 저지른 소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왜 어린 소년들이 비행으로 칟닫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드들을 내몰았는지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194쪽 

 

지금 어떤 관계에 놓여 있든 영우에게는 여전히 그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결국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앞으로 영우의 인생 또한 행복해질 수 있다. 210쪽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법정을 나가는 모녀의 뒷모습이 세상의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 법정에서 흘린 눈물은 민경이에게 소중한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사랑과 절대적인 믿음은 때로 사막을 숲으로 만들기도 하고 폐허 위에서도 생명을 자라게 한다. 자신을 향한 이모의 사랑과 믿음을 보았으니 민경이가 더 이상 방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민경이가 곧 마음의 상처를 털어내고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 언젠가 이모처럼 훌륭한 어머니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235쪽

 

꿈 많은 소녀의 소원이 겨우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이라는데, 그 작은 소원조차 들어주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조차 할 줄 모르는 여린 너의 마음이 무슨 죄가 있느냐. 사과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어른들이란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 외로운 네가 방황할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우리가, 어린 네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할 때 손 내밀어주지 못한 우리가, 너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우리가.. 252쪽

 

소년들이 사회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가족 간의 관계다.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가족관계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가족 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저녁시간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은 단순히 배고픔을 충족시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과 정서적 유대를 나누고 예절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이 시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면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지금 이 시대의 청소년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바로 밥상머리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정에서의 저녁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257쪽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걸 알고 나면 인생사 모든 일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이고, 자신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삶의 비밀과 인생의 질서를 아는 사람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질서의 열쇠이자 행복의 열쇠이다.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 처방을 이찌감치 깨우친 민철이가 기특하기 그지없다. 276쪽

 

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크지만 대체로 정신적 심리적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어려서부터 살가운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쫓기듯 그늘진 자리로만 옮겨 다니며 살아온 아이들, 부모도 있고 경제력도 아느 정도 안정적이지만 정서적 방임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고아와 다를 바 없이 자란 아이들, 특수한 문제나 경험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유나니 깊은 아이들. 이런 문제가 마음속에서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당장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잠재적 위험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소년들의 심리적 문제가 고착되기 전에 국가와 사회가 개입하여 그들을 어루만지고 살펴주어야 한다. 282쪽

 

 

 

 

Posted by 권 대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