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2011 서울복지필름페스티발에 다녀왔습니다. 이 영화제는 무상급식 등으로 보편적 복지가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청년, 보육, 장애인, 교육, 의료, 주거, 인권 등 우리의 삶의 현실과 복지담론을 그리고 있는 영화 10편을 모아 진행하였습니다. 자칫 어렵고 딱딱한 복지라는 주제를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는 영화로 쉽고 감성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도가니는 최근 엄청난 이슈가 된 영화로 최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까지 힘을 받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청각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로 관련 법 찬반 의견까지 나아간만큼 예비사회복지사로 꼭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복지영화제인만큼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 설치였습니다. 한국영화에 자막이 있는 것이 낯설었지만 청각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 청각장애인이 불편없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모든 영화에 한글자막을 넣어 장애인들의 시청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분노의 청각장애학교

무진시의 청각장애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의 청각장애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성폭행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들과 책임자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고 지금도 교단에 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에 대한 무관심과 달리 법조계와 언론, 경찰의 거대한 힘이 대조됩니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이 청각장애학교에 대한 분노가 큽니다.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그것도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청각 장애인에게 한 학교가 전체가 이러한 일을 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입니다. 최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행이 증가한 사회적 흐름에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이러한 범죄를 행했다는 것과 지금도 이들이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슈가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예비사회복지사인 제가 앞으로 일할 사회복지현장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예비사회복지사로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현장에서 비리와 인권파탄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실태와 원인을 알고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관점과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2. 돈과 권력 앞에서..

이 영화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기득권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잘 나타납니다.

먼저 장애아동 3명 중에 지적장애를 가진 2명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합의를 합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엄청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금으로 주는 그 돈을 받고 합의를 손쉽게 허락합니다. 또한 변호사와 교수가 주인공인 공유에게 학교발전기금으로 잃은 5천만원 이상의 돈과 서울에서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며 재판에서 손을 떼도록 유혹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갈등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고, 돈과 백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부장판사 급의 첫 재판은 무조건 이기게 해준다는 전관예우와 돈으로 판사와 검사를 매수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힘과 영향력이 절정으로 드러납니다.

이 일에 뛰어 들은 주인공 공유에게 ‘너 앞가름이나 잘하고 옳은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저 역시 집회에 나가거나 활동을 할 때 어머니께 이러한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것이 정의를 지키고 마땅한 일을 실천하기보다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며 경쟁하도록 하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영화에서는 돈과 권력이라는 힘 앞에서 한없이 작고 초라할 수 밖에 없는 서민들의 아픔과 한계가 드러납니다. 안타깝습니다.


#3. 또다시 드러나는 기독교의 사회적 공신력

학교 교장과 행장 실장은 무진교회 장로입니다. 이렇게 영화와 드라마에서 기독교는 그 사회적 공신력이 다른 종교와 달리 현저히 떨어집니다. 영화에서 이들이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법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재판 때마다 찬송과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과연 이들이 믿는 하나님과 성경은 어떠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영화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교회 현실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장로라는 이유로 무조건 MB 정권을 지지하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사회적 행동을 취하며, 성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복음(성경)과 다른 기복주의 설교만 하는 목회자가 만연한 것이 지금의 한국교회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문제가 많은 교회와 목회자 밑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다니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이 조금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이러한 목회자와 교회의 방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이번 한미 FTA에서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24)’의 말씀을 들고 물대포를 맞으며 반대를 외친 나들목교회 청년들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이러한 깨어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4. 따뜻한 이웃 한명이 있었더라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청각장애학교는 무진을 배경으로 합니다. 시골 첩첩산중 깊이 들어가야 학교를 발견할 수 있고 학교 주변 이웃들의 모습과 왕래는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통제된 채, 청각장애인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사업은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하여금 복지를 이루게 돕고 또한 더불어 살게 돕는 일입니다. -복지요결

그렇습니다. 사회복지는 당사자의 자주성을 살리고 지역사회와 더불어 공생하는 것이 마땅한 가치입니다. 또한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 어르신은 어르신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수급권자는 수급권자끼리 따로따로 모아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강약 지역사회와 이웃들이 누구나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의 모습입니다.

학교와 학생들을 동네에서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따뜻한 이웃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청각장애인이라도 일반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회통합이 필요하고 부득이하게 시설에서 생활해야 한다하더라도 지역사회 체계들과 연대, 소통, 공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도가니법, 공익이사제를 도입하라!

도가니 영화로 인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자칫 이 문제의 원인을 해당 학교와 가해자들의 개인적인 도덕성 문제로만 생각하거나 성폭행에 대한 형벌의 강화로만 이어지게 된다면 대단히 지엽적인 행동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도가니와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방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공익이사제를 골자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안입니다. 이는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이라는 공적 책임영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도가니와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입니다.

공익이사제 필요성은 2007년 처음 제기되었으나 사회복지법인과 종교인, 국회의원 등의 반대로 좌초된 법안입니다. 하지만 이번 도가니 영화를 통해 통과 될듯한 이 법안이 지난 11월 22일 한미 FTA 날치기와 함께 더불어 또 다시 좌초되었습니다. 이 공익이사제는 한미 FTA와 더불어 반드시 지켜내야 할 법안입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 삶의 현실과 복지담론을 풀어내기. 10편의 영화 중에 개청춘과 도가니 2편만 보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영화들도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좋은 영화제를 기획해 주신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권 대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