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하는 이유」 독후감


 

권대익


 

들어가며


“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월평빌라 단기사회사업을 선택하겠다.”


어느 선배가 한 말입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정보원 활동을 늦게 시작하면서 4학년 때 광활을 했었고, 취업을 1년 미루며 복지순례를 했었습니다. 학창시절 조금 더 기회가 있었다면 월평빌라 활동을 했을 겁니다.


지난 구슬4기 지지방문으로 거창에 갔었습니다. 박시현 선생님께서 ‘내가 여행하는 이유’ 책 출판 임박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들이 사업을 궁리한다면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대학생들이 활동하면서 꾸준히 글을 잘 썼고 퇴고 과정을 거쳐 출판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월평빌라, 제가 좋아하는 박시현 선생님께서 추천하는 책이니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애인 생활시설이지만 복지관에서 일하는 저에게도 사회사업 가치와 철학, 나들이 사업을 충분히 공부하고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강북지역 책사넷 모임에 제안했습니다.




배경이론 : 사람다움과 사회다움


책의 초입에 복지요결을 배경이론으로 설명합니다. 복지요결을 읽을 때 본문 부분을 집중해서 보고 시설 사회사업 부록은 자세히 보지 않았었는데 짧게 수록되었지만 기본 배경이론을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이 핵심입니다. 복지요결에서 말하는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은 시설 입주자에게도 동일합니다. 입주자가 자주하며 자기 삶을 살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이 핵심은 책 전반에 녹아 있습니다. 당사자가 자기 삶을 살고,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이 이어집니다.

시설이 어떤 곳인지도 알게 됩니다. 장애인들이 모여서 단체로 생활하는 시설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한 곳에 살기는 하지만 각각 자기 생활을 하는 자기 집입니다. 시설과 실무자는 당사자를 관리·감독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리사무소의 역할입니다.


복장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개인의 자유라고 할 수 있으나 입주자가 좋은 옷을 입고 잘 단장하기를 바랍니다. 직원도 품위있는 언어와 복장을 이뤄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품위있게 행동하고 언행도 삼간다는 겁니다. 약자일수록 예를 다해야 하는데 드러나는 복장에서부터 예를 갖춰야 합니다.


이 책은 월평빌라 입주자 두 명의 나들이 사업을 사회복지 대학생이 함께 거들은 이야기입니다. 중간중간 진하게 묻어나는 감동에 전성훈 씨와 정선영 양의 이야기가 술술 읽힙니다.




코 끝이 찡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 


1.
당사자 이름 세 글자 말하고 말을 잇지 못하더니 결국 눈물 흘린 연주, 손자와의 여행을 잊지 않겠다는 할머니 편지를 읽으며 모두를 숙연하게 했던 화평이,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함께 갈 동료를 얻었다는 은총이, 당사자의 손길 몸 짓 말에 귀 기울인 나현이.


박시현 선생님께서 쓰신 격려의 글부터 먹먹해집니다. 이 세 줄에 학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활동했을지 그려집니다.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뜻있게 실천했기에 눈물 흘릴 수 있었겠지요. 이런 사회사업가의 눈물이 귀합니다. 고맙습니다.


2.
전성훈 씨가 여행을 준비하고 누리는 모습에 자연스레 웃게 되고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동생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손자에게 선물로 받은 모자를 잃어버릴라 바람이 부는 곳에서 손에 꼭 쥐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집니다. 자연스러운 사람살이입니다. 소소한 감동입니다.


3.
할머니와 전성훈 씨의 여행이 끝난 후 할머니가 쓴 편지와 박시현 선생님의 댓글을 읽으니 코 끝이 찡해집니다.


할머지도 성훈이 야구치는 모습을 바라보니까 기뿌기가 한양없다.

할머니는 성훈이랑 이번 여행을 있지 않겠다. 130쪽


손자를 키워오신 보호자 할머니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보통의 장애인 당사자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의 마음은 제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구구절절 할머니의 편지를 되뇌는 박시현 선생님의 글에서 얼마나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진심으로 만났는지 느껴집니다. 이 모습에 또 감동입니다.


4.
선영이가 일하는 미용실 직원 야유회도 즐겁습니다.


실장님 남편 분이 선영이를 꼭 잡고 갔어요. 나중에 들으니 선영이가 계속 넘어지면 업고  내려오려고 했답니다. 184쪽


실장님 남편 분이 튜브 탄 선영이 밀어주는 모습은 젊은 삼촌이 어린 조카와 물놀이 하는 것 같습니다. 186쪽


함께하는 사람이 좋아 구운 벗서에서 전복 맛이 난다고 했다. 187쪽


자연스러운 나들이의 모습, 그 안에서의 소소한 추억과 감동. 아름답습니다.


5.
손녀들이랑 오니까 다리에 키운이 펄펄 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 자매와 함께 여행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마음 속에 있던 ‘불덩이’가 의젓한 손녀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이나마 식었을 겁니다. 손녀와 할머니가 함께하는 여행, 그 자체만으로 감동입니다.


6.
다음 주에 갈 거 같아. 거창에서 보자. 선생님 초대해 줘. 226쪽


선영이와 선영이의 단짝 아연이가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이정민 선생님을 찾아 부산으로 찾아간 여행입니다. 이전에도 부산으로 찾아가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선영이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며 다음 주에 거창에 가니 초대해 달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감동입니다. 시설에 봉사활동이나 가정방문이 아니라 옛 제자의 집에 놀러 가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사람살이. 말 한마디가 감동입니다. 그 간 이정민 선생님께서 거창에 놀러오셔서 초대를 받았을까요? 뒤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묻기로 시작한 사회사업


73쪽에 성훈 씨와 여행을 계획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글로 소통하고 물었습니다. 성훈 씨도 선영이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함께 계획합니다.


묻기에도 방법이 있고 요령이 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물으면 좋은 대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사업 방법의 묻기 편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면 좋겠어요. 73쪽


선영이가 바쁘더라도 함께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 심부름 하는 모양생이게, 그것도 당사자의 동의를 구한 다음에 해야 합니다. 173쪽


사회복지사가 만든 선택지에 함정이 있습니다. … 국장님 말씀대로 어떻게 하면 선영이가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175쪽


책에서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계속 당사자에게 묻습니다. 묻는 이유는 당사자가 주인이 되는 여행이 되도록 하기 위함일 겁니다. 시설에서 대규모 봉사자와 단체로 여행을 가거나, 실무자가 다 계획한 여행에 따라가는 여행이 아니라 당사자의 여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묻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눈만 껌벅이는 당사자일지라도 물어야 한다는 월평빌라의 이야기에서 배웁니다.




실패할 권리


더디고 힘들고 어설프로 부족하고 불편하고 위험할지라도, 실수 실패하고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래도 자기 인생 자기 삶을 살게 합니다. 46쪽


첫 직장을 구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께서 염려하셨습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 첫 직장을 잃자 할머니께서 ‘어디 가서 일해야 할텐데’ 하시며 염려하셨습니다. 75쪽


더디고 힘들어도, 어설프고 부족해도, 위험해도, 실수 실패해도 성훈 씨가 할 수 있는 것 찾아 할 수 있도록 거들어 주어 고마워요. 손자 노릇 하도록 거들어 주어 고마워요. 80쪽


신나게 달리다 내리막길을 만났다. 잘 내려가다 그만 브레이크 작동이 서툴러 넘어졌다. 117쪽


시설에 살면 ‘휴관’에 도서관 가는 허탕할 일이 별로 없어요. 이런 실수나 실패를 사전에 막죠. 성공해야 한다는 신화를 쓰느라 말이죠. 217쪽


일전에 박시현 선생님께 당사자의 실패할 권리, 아플 권리, 불안전할 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 아무 생각 없이 들으면 이상합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실무자라면 당사자가 실패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안전하도록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비장애인들의 삶도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아프며, 때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살이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실패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안전해야 한다는 가치가 최우선이었다면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요? 봉사자와 직원이 중심이 되어 장애인들에게 나들이 복지사업을 했을 겁니다.




당사자는 전방 직원은 후방


택배기사 아저씨에게 성훈 씨이름으로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102쪽


직원에게 예약자인 ‘전성훈 씨’가 체크인 안내 받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125쪽


선영이 하교 후 농협에 들러 합천 숙소 경비를 입금했다. 입금 후 문자로 쿠폰이 왔다. 선영이가 원하는 방을 골랐다. 대학생팀은 예약자 ‘정선영’과 같이 가는 언니이자 둘레 사람일 뿐. 179쪽


눈을 맞추며 자세히 꼼꼼하게 설명하셨다. 선영이도 그 마음을 아는지 직원의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253쪽


‘당사자는 전방 직원은 후방’은 월평빌라의 구호이자 당사자를 돕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월평빌라의 방법이 책 구석구석에 녹여져 있습니다. 당사자의 삶이 되도록 당사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


성훈 씨로 인해 썰매장에 안전요원이 추가 배치되었다. ‘이렇게 만나기만 해도 지역사회에 장애인을 위한 이해와 배려가 조금씩 늘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얘가 정상이 아닝께 그러니 잘 알아서 봐주세요.”
“할머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해야 해요.” 58쪽


‘장애인이니까 조금 시끄럽게 해도 괜찮겠지.’ 하는 것도 차별이 아닐까요? 다만 성훈 씨에게 부탁하고 설명하는 것을 도서관 직원이 하면 좋겠습니다. 은총 학생이 생각한 ‘장애인도 살만한 사회,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 가까워 보여요. 90쪽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니,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게, 더불어 살게’ 되네요. … “설명할 때 ‘월평빌라’가 아니라 ‘집’이라고 하셨다. 감사하다.” 월평빌라를 집으로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254쪽


우리나라에 장애인의 비율이 10% 가까이 된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 동네에 나가면 장애인을 많이 만나 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 집에 있거나 시설에서 보내기 때문이겠지요.


월평빌라는 입주자와 직원들이 지역사회를 다닙니다. 18쪽 월평빌라 소개를 읽으면 월평빌라의 일상이 그려집니다. 입주자와 직원이 부지런히 구석구석 지역사회를 다닐 겁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렇게 될 때 자연스럽게 장애인도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기록의 중요성


이 책 자체가 기록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줍니다. 생활시설에서 나들이 사업을 갈 때 이 책이 귀한 선행연구 자료가 될겁니다. 어떻게 나들이를 가야 할지, 어떻게 유익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행정업무 속에 파묻힌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남기는 이런 기록이 필요합니다.


기록의 방식도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당사자를 만날 때, 사례관리를 할 때에 관찰일지, 상담일지, 초기면접지라는 방식으로 기록을 남길 겁니다. 당사자가 찾아와서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우리는 당당하게 이 기록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월평빌라가 당사자의 강점을 담아내고,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기록은 당사자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당사자나 가족들도 훈훈하게 이 기록을 읽을 겁니다. 이 책을 출판준비하며 전성훈 씨와 선영과 가족과 이웃에게 동의를 구할 때 흔쾌히 허락해주었을 겁니다. 언제 책이 나오는지, 어떻게 구입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한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대학생이 매일 기록을 하고, 댓글로 지지·격려·칭찬·응원한 실무자의 글도 감동입니다. 매일 꼼꼼하게 글을 읽고 슈퍼비전을 주었겠지요. 빨간 펜으로 행정적인 부분만 잡아내는 보통의 사회복지 현장의 슈퍼비전과 다릅니다.




사회복지 대학생


이 책은 여름 방학에 4명의 대학생이 활동한 이야기입니다. 일주일 동안 합동연수로 공부했고, 4주 동안 월평빌라에서 실천했습니다. 함께 합숙하면서 뜨거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대다수의 사회복지 대학생이 맹목적인 공무원 준비에 매달리고, 현장에 좋은 사람이 없다는 볼멘 소리가 들리는 지금의 시대에 사회사업의 열정을 갖고 준비하는 대학생이 있음이 희망입니다. 이런 학생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전국의 사회복지 대학생이 이 책을 일고 이 감동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고나현 김은총 서화평 최연주. 4명의 학생 이름을 기억합니다. 기회가 되면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저자 싸인도 받아야겠지요?




나가며


월평빌라를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사업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월평빌라가 그동안 거창에서 꾸준히 지역사회를 만나고 당사자를 사람답게 도와온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뜻있게 실천하기 위해 조직에서 함께 합의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있었을 겁니다. 월평빌라 조직에서 미션과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쓴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이 책의 제목은 ‘내가 여행하는 이유’입니다. 전성훈 씨와 선영이가 여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책에서는 정답을 명쾌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를 떠올려봅니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이유가 다양할 겁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견문을 넓히기 위해, 그냥 좋으니까 등 여러 이유로 여행을 합니다. 월평빌라 입주자가 여행하는 이유도 비장애인인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행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사람살이 중 하나니까요.


책을 덮으며 소소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소박하고 평범한 여행 이야기에 사람 냄새가 납니다. 이래야 사람 사는 모습입니다. 이게 사람다움의 모습입니다.


“여름 태양이 뜨거운지 우리 심장이 뜨거운지 겨뤄보자!”


박시현 선생님의 외침이 대학생들에게 여름 태양보다 뜨거운 심장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는 저에게 타는 목마름으로, 뜨거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저에게 또다른 뜨거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지금은 복지관에서 후원 홍보 자원봉사 공간관리와 같은 사업을 합니다. 사회사업을 하던 때와 달리 관리사업이 많아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지역사회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고 싶습니다.


귀한 책 엮어준 대학생과 월평빌라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권 대익